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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3 44년전 오늘 이명박 학생은..

44년전 오늘 청년 이명박은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에 항의하며 시위대와함께 종로에서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1만여 명의 대학생들이 청와대 길목에서 군경과 대치하며 "굴욕외교 중단하라", "박정희 정권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군경과 대학생들 사이에는 트럭으로 만든 바리케이트가 놓여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일국교 정상화를 위해 비밀리에 협상하고 있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생들은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이던 이명박 학생은 이 6.3시위를 배후에서 주도했다.

이 시위가 그 유명한 6.3 사태다.

1964년 6월 3일, 서울 주요 대학생들과 시민들 1만여명이 시내 중심가로 쏟아져 나왔다.

민정 불참 약속을 뒤집고 출마한 박정희 후보가 63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윤보선 후보를 15만여표라는 간발의 차로 따돌리고 당선 되었다. 당선 후 국정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삼은 것이 한일 국교정상화였다. 6.3사태는 한일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4.19 이래 최대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이 시위는 64년 3월 23일 김종필 공화당 의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간의 한일회담 일정 합의에 반대하는 3.24 시위 아래 본격화한 굴욕적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반대시위였다.

박정희 정권은 군대를 동원했다. 이날 저녁 8시를 기해 서울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4개 사단 병력을 서울 시내에 투입했다. 7월 29일 계엄이 해제 될 때까지 일체의 집회.시위가 금지 되었고, 대학휴교, 언론.출판의 자유가 구속 되었다.

주한 미군 사령관은 한국군 2개 전투사단의 동원을 승인했다. 7월 29일 계엄 해제 때까지 1천여명이 검거 되고 3백 여명이 구속됐다.

당시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이던 '청년 이명박'은 고려대에서 있었던 '주체성을 잃은 굴욕적 대일 외교 반대 선언문' 발표에 관여하는 등 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이유를 <신화는 없다>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양국 간의 민족사적인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있는데 단순한 경제 논리로 덮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는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일제가 사과를 하고 들어와야 할 성격의 일이지, 우리 쪽에서 먼저, 그것도 밀실 협상을 통해 손을 벌리고 들어간다는 것은 민족적 감정이 용납할 수 없다. 군사정권이 한일 국교 정상화를 현실적 필요에서 파악한 데 견주어, 학생과 대다수 국민은 이 문제를 민족사의 장구한 흐름 위에서 파악하고 있다. 군사정권의 판단은 조급하고 졸속적이다."

44년이 흘렀다. 오늘이 바로 44년 전 그날이다.

이명박의 처지는 극명하게 바뀌어 있다. 대일굴욕외교에 반대하며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던 이명박은 지금 청와대에 있다. 44년전 청년 이명박을 대신해 파릇파릇한 청년들이 대미굴욕외교에 반대해  지금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Posted by Watari Yu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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